12년간 모두 1500장 촬영해준 경찰관

"변변한 사진 하나 없이 마지막 맞는 노인들 안타까워"

16일 오후 경남 의령군 대의면 중촌리 마전마을에 의령경찰서 칠곡파출소 김도주(56) 소장의 차가 들어섰다. 거동 불편한 노인들이 마중을 나왔다. 김 소장은 "많이 늦었지예, 죄송합니다"라며 뒷좌석에서 액자를 꺼냈다.

지난 12년간 김 소장은 시골 노인들의 사진 1500여장을 찍어줬다. 모두 영정에 쓸 사진들이다. 90년대 중반 경찰 감식반에서 근무할 때 급사한 노인들을 보고 영정 사진 찍어주기를 시작했다. "나물 장수 할머니가 길에서 쑥 보따리를 안고 쓸쓸히 돌아가신 현장에 나갔었죠. 객지로 나간 자식들이 장례를 치르러 내려왔지만, 영정이 없어 애를 먹었어요." 결국 김 소장은 낡은 가족사진에서 할머니의 얼굴을 확대해 영정을 마련했다.

김 소장은 2000년 파출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농촌엔 형편이 어렵거나 사진관에 가기엔 몸이 불편해 영정을 찍어두지 못하는 노인이 많았다. 김 소장이 독거노인들의 영정을 한두 장씩 촬영하자 곧 소문이 퍼졌다. 노인들의 부탁에 김 소장은 '영정 사진가'로 나섰다. 매년 700만원이나 되는 액자값과 인화비를 사비로 해결하다 보니 집에선 잔소리를 듣기 일쑤다. 그래도 장례를 치른 후 감사 인사를 들으면 힘이 난다고 김 소장은 말했다.

그는 여러 사진 대회에서 입상한 실력파다. 지난해 9월엔 경찰관 중에서 최초로 공무원미술대전 초대 작가로 선정됐고 심사위원도 맡았다. 대학 때 산악회 활동을 하면서 풍경을 눈과 머릿속에만 담아두기가 아까워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1일 김 소장은 마전마을을 찾았다. 박원달(74) 할아버지, 김금순(65) 할머니 부부 차례가 되자 할아버지가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우린 결혼사진보다 영정을 먼저 찍네." 가난 때문에 결혼식은커녕 사진도 꿈꿀 수 없었다는 사연을 들은 김 소장은 '48년 만의 결혼사진'도 찍자고 제안했다. "카메라 앞에 처음 나란히 선 노부부를 보면서 코끝이 찡했다"고 김 소장은 말했다. 김 할머니는 "박봉에 사진 찍어주기도 어려울 텐데…"라며 눈물을 훔쳤다.

조선닷컴